화엄사
2011.05.07
"사성암"을 떠난 우리는 내친김에 "華嚴寺"를 찾았다.
입장료(@3,600)를 내고 들어서니 "일주문"이 있는데
"大" 화엄사라는 현판의 글이 조금 마음에 안든다.
주차장에서 오르는 길 옆에는 계곡다운 싱그러움이 펼쳐지고
시원한 계곡물 소리가 더위를 가셔준다.
입구에는 "초파일"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리고 있고
"불이문"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가 창건하고,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셔와서 4사자 3층석탑
(불사리 공양탑)을 세우고, "의상대사"가 문무왕 10년(670) 3층의 "丈六殿"을
건립하여 대 도량의 기틀을 마련 했으며,
나말 여초에 "도선국사"가 중창하고 "화엄사"를 총림으로 키워냈다.
그후 임진왜란때 불탄것을
인조 14년(1636) "벽암선사"가 재건하여 가람의 기틀을 이루었다.
다른 사찰과 달리 오른쪽으로 살짝 비켜서
북동쪽으로 길을 오르니 "금강문"이 보이고,
오른편에는 용머리에 거북 형상을 한 좌대위에 멋진 비석이 서 있다.
"금강문"에는 "금강역사"와 "문수,보현동자"가 안치되어 있으며
다시 길을 따라가니 서쪽으로 약간 비켜 선 위치에 "천왕문"이 나온다.
무서운 모습이지만 친근하게 느껴지는 4대천왕께 인사드리고
길을 오르니 갑자기 거대한 2단의 석축계단이 앞을 가로 막는다.
길을 오를수록 점점 엄숙한 마음이 들도록 계산된 가람배치라 생각된다.
"보제루"는 안마당과 높이를 맞추려는듯 24개의 나무기둥을 받쳤는데
보통 그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에 이르는 방법과 달리
"루"의 옆을 돌아가게 한 점이 특이하다.
다시 계단을 오르자 그때서야 "대웅전"이 보이는데
"대웅전"은 또다른 계단을 올라야만 도달할 수 있도록 권위를 부여한 모습이다.
"대웅전"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건축물인데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인조 14년(1636) 재건된 정면 5칸,측면 3칸의 단층 팔작 지붕집이다.
기둥 사이의 간격이 같고 기둥이 높아서 정연한 모습이며
기둥사이에 각각 3짝의 문을 달고 그 위에 "교창"을 낸 모습이다.
"대웅전"은 보물 제 299호이며 주존불 로는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왼편의 "覺皇殿"은 현존하는 불전 가운데 가장 큰 규모에 속하면서도
안정적인 비례에 엄격한 조화를 이루어 위엄과 기품이 동시에 느껴진다.
본디 "장육전"이었으나 조선 숙종때(1699년) "각황전"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았는데,"부처님을 깨달은 왕" 또는
"임금님을 일깨워 준공한 전각" 이라는 뜻 이라고 한다.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 팔작 다포집인데,바깥에서는 중층이지만
내부는 툭 터진 通層으로 15개의 높은 기둥이 받치고 있다.
좌상 형태의 본존 세분이 있고 그 사이에 보살 네분 -
총 7개의 불상이 배열되어 장엄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이 건물이 유명한것은 전각벽면을 화엄경을 새긴 돌판으로 둘러서인데
지금은 약 1,500점 정도의 석경 조각들만 남아 있어서 안타깝다.
"각황전"은 국보 제 67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려다 보이는 마당에는 좌,우에 나란히 오층석탑이 있다.
"서오층석탑"은 이중기단위에 5층의 탑신부를 얹었으며 하층기단에 십이지신상을
상층기단에 팔부중상을 1층 몸통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몸통과 지붕돌은 각각 한 돌이며 상륜부에 2층 단이 있는 노반위에 보주가 있다.
높이는 6.4m이고 상하의 체감율과 유려한 지붕틀이 잘 조화되어 경쾌하고
우아한 모습이며 보물 제 133호로 지정되었다.
반면에 "동오층석탑"은 단층기단에 아무런 장식없이 수수한 모습이다.
여러장의 석재로 지대석을 짜고 탑신부는 몸통과 지붕틀이 각각 1매로 되어있고
2층 이상의 몸통은 1층 몸돌에 비해 급격하게 체감된다.
상륜부에는 2층 단이 있는 노반과 반구형의 복발,보주형의 석재가 놓여있다.
보물 제 132호로 지정 되어있으며 높이는 6.4m이다.
"각황전" 바로 앞에는 국보 제 12호로 지정 되었으며 높이 6.7m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석등이 있다.
竿柱石이 당시 전라도 지방에서 유행하던 장구 모양의 오복형이며
섬세 하면서도 시원한 스케일이 위엄을 느끼게 한다.
팔각 하대석 각면에는 짝을 이룬 안상이 조각되었고
간주석은 중앙에 2조 횡대를 돌리고 팔각의 면마다 4엽 꽃무늬를 장식하였다.
상대석은 8엽 양련을 조각하고
팔각의 화사석에는 화창을 네곳에 내었을 뿐 장식이 없다.
지붕틀은 얇은 편이고 처마밑은 수평이며 추녀 위에는 귀꽃을 크게 세웠다.
상륜부는 사다리꼴 노반과 팔각 양화를 얹고 그 위에 보륜,
귀꽃이 달린 보개를 차례로 얹었으며
정상에 연화가 장식된 보주를 얹어 마무리 하였다.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光明燈"이라고도 하는데
대게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건축물 앞에 배치한다.
"원통전"앞에는 "사자탑"이 있는데 내 눈에는 원숭이 같이 보인다.
보물 제 300호인 "사자탑"은 통일시대 석탑으로 네마리의 사자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보통 "노주"라고 부르는데 불사리를 모셔 놓은것 이라고도 하고
공양대로 쓰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기단은 2단인데 아래층은 무늬없는 석재로 소박하고
위층 기단은 각 모서리에 사자상을 놓은 모습이다.
사자들은 연꽃 받침위에 앉아 연꽃이 조각된 돌을 머리에 이고 있으며
탑신 몸돌의 각 면에는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둘렀고
그 안에 신장상이 조각되어 있다.
몸돌 위에는 1장의 판돌이 있는데 밑면에 연꽃이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반구형의 돌이 솟아있다.
국보 35호인 "사사자삼층석탑"을 모방한 것으로 9세기 작품으로 보고있다.
연등 아래를 거닐며 부처의 자비를 생각해 보다가
"구층암"까지 가려고 했으나 포기하고
피안의 세계로 들어 가는듯한 입구만 감상하다가 발길을 돌렸다.
포개져 보이는 전각의 지붕들이 만들어 내는 유려한 곡선도 감상하면서
내려 오는 길에 "범종각"도 구경하고
그 아래에 위치한 맛배지붕을 하고 있는 전각을 지나는데
벽면의 구성이 너무도 재미있다.
내려오면서 다시 "사천왕" 4분한테 하산을 고 하였다.
휴게실의 멋진 소품 앞에서 연잎차를 마시니 분위기 때문인지 기운도 생긴다.
그런데 탁자위의 그림을 보니 "원통전앞 사자탑"을 "4사자 삼층석탑"으로
착각하고 그냥 내려 온것이 못내 아쉽다.
아쉬움에 옆마당의 너무도 예쁜 연못을 사진에 담아보고 내려왔다.
* 화엄사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