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1(육영수생가)
2011.06.05
옥천읍 교동리 313번지에 있는 "육영수여사" 생가를 찾았다.
1600년대 부터 삼정승(김정승,송정승,민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1894년 충청도 지역 상류 주택 양식으로 축조 되었는데
1918년 육여사의 아버지가 매입하여 건물의 기단을 높혀 개축하였다.
오랫동안 방치 되어 퇴락하였다가 2002년 충북 기념물 제 123호로
지정되고,2004년 복원을 시작하여 2010년 5월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대문을 들어서니 너른 마당 너머에 사랑채가 보이는데
2칸의 온돌방과 3칸의 대청이 있고 전면에는 툇마루,왼편에 창고가 있다.
뒤로 돌아가니 "연자방아"가 나오고 그 옆에는 "뒤주"가 두개나 있어서
살림 규모가 얼마나 컷는지 짐작이 간다.
방아 아래쪽 문으로 내려가니 "아래채"가 있는데
"ㄱ"자형으로 조선 후기 반가의 안채평면의 유형을 보여준다.
방에는 수납 공간인 다락과 베란다(?) 같은 공간이 아기자기 하다.
본채쪽을 바라보니 아까 보았던 사랑채 왼편의 창고가 보이는데
밑면을 띄워 놓아서 보관 기능을 극대화 한듯 하다.
안채는 "ㄷ"자형 구조로 몸채는 2칸의 온돌방과 2칸의 대청으로 구성되며
전면은 툇마루,대청은 우물마루이며 날개채가 구분되어
이 또한 조선 후기 반가의 공간 구성 양식을 보여준다.
안방에는 보료가 깔려있는데
마루 한쪽 끝에 비밀창고가 있고 자물쇠가 채워진 모습이 재미있다.
그리고 사랑채의 뒷면에도 비밀스런 공간이 보이는데
정말이지 열리고 닫힘이 자유로운 한옥의 공간구성에 감탄할 따름이다.
동편의 작은문으로 나왔다가 들어 갔다가 하면서
한옥이 만들어 내는 조형미를 감상하다가
안채 뒤편으로 가니 안방 바로 뒤에 또 조그만 방이 나오는데
육여사가 출가하기 전까지 살던 방이란다.
세간살이 사이에 1사람이 겨우 누울 만한 아담한 방이다.
안채 뒤에는 사당과 장독대가 있고
또 하나의 문을 통과하니 "위채"가 나오는데 "ㅁ"자형으로
서쪽은 안채에서 동쪽은 외부에서 직접 진입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몸채는 2칸의 온돌방과 2칸의 대청으로 이루어 있는데
온돌방에는 다락같은 수납 공간이 자리하고
시원스런 대청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또 다른 온돌방이 자리한다.
집 구경을 마치고 "후원"에 오르니 널따란 공간에 서있는 정자의 모습이
한 없이 여유롭게 느껴진다.
"위채"앞에는 "연당사랑"이 있는데 연못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는 공간으로
이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면 3칸으로 전면에 툇마루가 있고 내부는 우물마루로 되어 있는데
온 가족이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소였고
겨울에는 연못에서 스케이트도 탓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