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아유슈비츠)
2012.01.09
"Krakow"를 떠난 우리는 서쪽으로 61km 떨어진 "Auschwitz"로 향했다.
처음으로 "톨게이트"를 지나자 이것도 신기 하다는 생각이 든다.
벽돌 건물이 즐비한 곳에 도착한 버스를 내려서 기다란 2층 건물 앞으로 가니
"아유슈비츠"라는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음산한 분위기가 풍긴다.
입장권을 끊고 건물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가니
왼편으로 기다란 단층 건물이 이어지고
중앙의 잔디밭 오른편으로 단층 건물과 평범해 보이는 벽돌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곳이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활용되는 제1 수용소 입구다.
잔디밭을 돌아서 나타나는,
망루가 달린 이 단층 건물 오른편의 차단기를 통과하면 수용소로 들어 가는데,
바로 이런것을 두고 "生死의 갈림길"이란 표현을 쓰는가 보다.
건물 오른편 차단기의 위쪽에는 독일어로 "Arbeit Macht Frei" -
"일하면 자유로워 진다"라는 가증 스런 문구가 달려 있다.
차단기를 통과하는 곳의 左 右에는 이처럼 높은 2중의 전기 철조망이 있어
수용소와 외부를 철저하게 격리하고 있으나
안쪽은 이처럼 평범한 2층 붉은 벽돌 건물로 별다른 특색이 없어 보인다.
건물에 들어서니 중앙의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페치카"달린 방이 배치되어 있고
그 당시의 수용소 생활상을 찍은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는데
이토록 생생한 사진이 많은 것은 "나치"가 그들의 업적(?)을 선전하기 위해서
전용 사진사까지 두고 각종 사진을 촬영했기 때문이라니, 아이러니 하다.
그리고 다른방에 들어가니 "아유슈비츠"에 수용소를 짓게된
지리적 배경이 설명된 지도가 있는데,주도 면밀한 독일인의 시각을 엿보게 한다.
계단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 내렸는지 말해 주는듯 울퉁 불퉁하고
2층에 오르니 수용소의 잔학상을 볼 수 있는 코스가 시작 된다.
첫번째 방에는 가스 학살때 사용하던 가스통의 잔해와 모형이 전시 되었는데
처음에는 총살을 했는데 총탄 비용(?)이 크고 학살 효율(?)이 적으며
병사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일이 많아 지자
후반기에 들어 서서 대량 가스 학살로 바꾸었다 한다.
다음 방에는 철제 안경들이 쌓여 있고
그 다음 방에는 갖가지 천들이 전시 되어 있으며
또 다른 방에는 장애자용 보조 기구들이 놓여 있는데
방을 지날때 마다 머리털이 쭈뼛 쭈뼛 서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희생자들의 머리털로 모포를 만들었다는 전시실은 사진을 찍을 수 없지만
허용 했더라도 사진에 담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을 것이다.
각종 범랑 컵과 냄비같은 주방용 기구도 있고
각종 신발도 산더미 처럼 쌓여 있으며
가방은 물론이고
면도용 거품기 까지 일목 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어찌 보면 "분리수거"의 표본이 될 만 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들의 주도 면밀한 약탈이 이런곳 에서 까지 이루어 졌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고 치가 떨린다.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기차를 탓던 그들을 기다리는 곳이
이토록 처참한 수용소 일줄 그들은 생각이나 했겠는가!
망루가 있는 전기 철조망을 나서자
마치 방공호 인듯,굴뚝 하나 덩그라니 서 있는 건물로 들어 서니
바로 이곳이 공포의 가스실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절망으로 도배된 콘크리트 방은 지금도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데
소박한 제단 앞에 놓인 꽃들이 억울하게 죽은 그들을 위로나 할 수 있을런지,,,,
애써 외면하며 가스실을 나오자 바로 화장터로 연결 된다.
학살 당한자 들을 바로 이곳에서 태워 없앴다니 억장이 무너 지는 심정이다.
이제 관람이고 뭐고 빨리 이곳을 벗어 나고 싶은데
다행하게도 문을 나서니 "아유슈비츠"코스가 끝이 난다.
살벌한 2중 전기 철조망에 둘러 쌓인 수용소를 보면서 나오는데
다시는 이런곳에 오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