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경상도여행

해인사

winwin55 2011. 10. 19. 18:28

2011.10.01

 

앞으로 100년 동안 대장경판을 볼 수 없다는 말에 "海印寺"로 향했다.

法寶宗刹 해인사는 佛寶寺刹 통도사,僧寶寺刹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사찰로 꼽히며,한국 華嚴宗의 근본 도량이자

우리 민족 믿음의 총화인 八萬大藏經을 모신 사찰이다.

신라시대 화엄十刹의 하나로 신라 40대 애장왕 3년(802)

순응,이정 화상에 의해 창건 되었다.

大方廣佛화엄경의 海印三昧 라는 구절에서 "해인사"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는데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없이 넓고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서 멈출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海)속에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다.

"紅流同계곡"을 따라 굽이 굽이 길을 따라가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성보 박물관을 지나서 올라가니 차량 통제소로 쓰는듯한

앙징스러운 한옥이 고목 아래에 자리한다.

왼편의 탐방로를 오르니 건물 내부에 설치작품이 있어 살펴보니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해인 아트프로젝트" 참가 작품이다.

"비석거리"에 도착하니 공적비들이 즐비하고 오른편에 "길상탑"이 보인다.

2단 기단위에 3층 탑석을 세운 통일 신라시대의 정형적인 석탑으로

높이는 3m이며 진성여왕 8년(895) 사찰의 보물을 지키려다 희생된 승려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건립되었다.

안내도 옆에는 "元景王師碑"가 있는데 고려시대 고승 원경왕사(1045-1114)를

기리고자 조선 인종 3년(1125)에 세운 비석이다.

거북 받침돌,비몸,지붕돌을 갖추었는데 비몸이 얇은 것이 특이하다.

드디어 길 오른편으로 一柱門이 보인다.

당간지주 뒤로 나무들 사이에 세워진 문은, 모든 생각과 시선을

오로지 한곳으로 집중하여 부처에게 다가 오라는 암시를 느끼게 한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一柱門路"가 뻗어 있다.

양 옆의 나무들 사이로 "鳳凰門"을 향하여 반듯하게 뻗어가는 모습이

속세의 모든 분별심을 버리고 청청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 가는듯 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부처님이 길 오른편에서 나를 맞아준다.

반으로 갈라진 부처 사이에 앉아 잠시 명상을 해 보라는 설치 작품으로

어찌 보면 부처모독 같은데도 작품을 설치 하도록 배려한 아량이 돋보인다.

제 2문인 "봉황문"에 이르렀다.

"海印叢林"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이 문은  "天王門"인데

사천왕이 조각상이 아니라 그림으로 되어있어 특이하다.

 

봉황문을 지나자 가파른 계단위에 제 3문인 "解脫門"이 나온다.

이 문도 일반 사찰의 "不二門"에 해당하는데

계단의 수가 33개로 도리천 곧 33천의 궁을 상징 한단다.

불편한 몸을 이끌면서도  33계단을 올라서,

 解脫門을 넘어서는 노인의 뒷모습에서 인간의 염원을 읽을 수 있는듯 하다.

해탈문을 들어서자 너른 마당이 나온다.

그러나 대웅전은 보이지 않고 전면에 "九光樓"라는 2층 전각이 있다.

구광루는 흔히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의 "보제루" 또는 "만세루"라 부르는,

법회때 승려나 신도들의 집회 강당으로 쓰여지는 건물로

보통 누각으로 지어지나 누각의 기능을 없애고

경내 마당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건물 좌,우에 계단과 작은 문을 만들었다.

불교용품점,박물관,창고로 쓰이는 이곳은 잘못 지어진 건물로 혹평이 나 있는데

1층 오른편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마당 왼편에는 종루가 있고 그 앞에는 "해인만다라"가 설치 되어 있다.

海印圖를 합장하고 돌면서 "광명진언(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 훔)"을 외우면 무수한 공덕을 성취하고 업장을 소멸하여

바라는 소원을 성취한다고 한다.

구광루 옆문을 들어서자 드디어 대웅전이 나타 나는데

"大寂廣殿"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華嚴經의 本山이므로 화엄경의 主佛인 비로자나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

"비로자나"는 산스크리스트어 "바이로차나(Vairocana)"에서 나온 말로

영원한 법-진리를 상징한다.

 

대적광전은 창건시(802년) 지어진 뒤,1818년 다시 지어졌으며

일곱 불상을 모시고 있다.

중앙 계단에 장식된 뿔과 비늘이 있는 동물이 무었인지 궁금하지만

대장경을 보려는 급한 마음에 대적광전 뒤로 돌아서니

또 다시 급경사의 계단이 앞을 가로 막는데

눈을 들어보니 "八萬大藏經"이란 현판이 보인다.

이제 저 계단을 올라서면 일주문부터 108계단을 올라 서는 것인데

번뇌망상을 쉬고 분별심을 여의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서고 있는것인지 염려가 된다.

그런데 계단을 올라 "수다라장" 입구에서 뒤돌아 서서

출입구의 유려한 곡선을 사진에 담으려 하자, 심한 제지가 들어온다.

플래시를 터트리는것도 아니고 장경판을 찍는것도 아니라

건물 외부를 사진에 담으려는데, 너무 야박한 처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장경판전은 직사각형 대지에 "수다라장"과 "법보전"을 나란히 마주보게 배치하고

좌 우측 끝에 "동,서 사간전"이 배치된 형태이다.

"수다라장"은 정면 15칸 중 가운데에 개구부를 만들었는데

앞면에 상하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곡선으로 된 판재를 고정시켜서

종의 형태를 연상시키는 곡선이 아름다운 출입문을 가지고 있다.

좌 우 양측으로 경판장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있고

경판은 판가에 쌓아서 보관하고 있다.

건물 앞면의 창은 위의 창보다 아래의 창이 4배 정도 크고

뒷면은 위의 창이 아래의 창 보다도 1.5배정도 크게 되어있다.

수다라장 반대편 약 16m 정도 떨어진 곳에 같은 규격으로 지어진 "法寶殿"은

중앙칸에 분합 살문을 달고 비로자나불과 문수,보현 협시 보살을 봉안 하였다.

"동,서 사간전"은 수다라장과 법보전 사이 서북과 동북 양쪽에

마주 보게 지어진 작은 경판전으로 정면 2칸,측면 1칸의 맞배 3량집이다.

출구에서 "수다라장"의 앞면을 사진에 담았는데

대장경 판전은 국보 제 52호,대장경판(81,258매 or 81,350매)은 국보 제 32호 이며

국보 제 206호인 고려판각 2,275매도 함께 보관 되어 있다.

판전 오른편으로 내려오니 "獨聖閣"이 있다.

원래 독성,용왕,삼신을 모셨는데 지금은 독성 한분만 모시단다.

독성각 옆의 커다란 나무들을 감상하고서

대적광전 앞뜰로 내려왔다.

일주문,봉황문,해탈문과 구광루,대적광전,법보전 까지

일직선을 그리며 놓인 집과 문들을 가운데에 놓고

그 양쪽으로 당우들이 들어서 있는 짜임새 있는 가람의 배치가 돋보인다.

梵鐘도 구경하고 일주문로에 내려오니

들어올 때에 무심코 지나친 枯死木이 눈길을 끈다.

신라 40대 애장왕이 왕후의 난치병을 낮게 해준 보답으로 해인사를 창건하고

이를 기념하여 심은 나무라고 하는데,

1,200 여년의 세월동안 해인사와 함께 하다가 1945년 枯死 하였다고 한다.

성철스님의 사리탑을 찾았다.

가운데 원주는 깨달음과 참된 진리를 상징하고 등을 맞대고 있는 반구는

활짝 핀 연꽃을 표현하며,크기가 다른 정사각형의 3단 기단은

계정혜 삼학과 수행과정을 의미 한단다.

아래쪽에 현대 조각작품 같은 사리탑이 있어 사진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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