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2
1호선 관악역에서 만난 우리는 시간도 절약하고 지루함도 없애려고
택시를 타고 삼막사 입구까지 간 다음 계곡을 올랐다.
물이 없어 삭막 했으나 생각보다 계곡의 규모가 크고 경치가 좋았다.
낙엽이 쌓인 돌길을 한걸음씩 오르다 보니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도로를 올라서니 "三幕寺"가 보인다.
계단의 중간 부분을 곡선으로 처리한 여유로운 모습을 느끼며 올라서니
대웅전 앞에 놓인 노란 국화만 눈에 들어 온다.
"三幕寺"는 1,300 여년전 신라 문무왕 17년(677) 元曉,義湘,尹弼
세 성인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것이 기원이며 산 이름도 "三聖山"이 되었다.
그 후 道詵國師(827-898)가 중건한 후 觀音寺로 부르다
고려 태조가 중수 하면서 다시 "삼막사"로 고쳐 불렀다.
조선 초기 무학대사가 한양 천도를 즈음해서 절을 중수하고 국운의 융성을 빌었는데
"南曰(남왈)三幕"이라 하여 한성주변의 4대 명찰로 꼽히던 곳이다.
조선 후기의 건축물인 망해루와 명왕전 그리고 고려시대 삼층탑인 "살례탑"이 있다.
왼편길을 오르니 "반월암"이 있는데 암자로 오르는 계단 옆에
시주 금액에 따른 碑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 이다.
반월암을 조금 지나서 왼편 바위에 특이한 유물이 있다.
바위벽에 부도를 조각한 것인데, 바위벽을 얕게 갈아낸 후
상단에는 花紋形을 하단에는 舍利龕室(사리감실)을 만들어 조성하였다.
조선 후기의 부도로 추정 된다.
전파탑 옆의 콘테이너 박스에 오르자 "삼성산 481m"라는 조그만 팻말이 있다.
같이 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곳이 정상이라는 사람도 있고,
인공 구조물이라 인정이 안되고 건너편 태극기가 꽂힌곳이 정상이란 이도 있다.
그래서 전파탑을 돌아서 가는데 갑자기 기암 괴석들이 나타난다.
뱀이 머리를 들고 있는 뱀바위(?)를 지나니
능선에 준수한 바위가 보이나 너무 심한 낙서(?)에 신음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험한 바위가 득실 거리는 능선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바라보니
태극기가 있는 봉우리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이제 마지막 고비인듯 하다. 이 험한 바위를 넘어가면 정상이 나올 듯 하다.
드디어 정상이 보인다.
표시석의 앞면에는 "삼성산 477m" 뒷면에는 "국기봉 477m"라고 쓰여있어
이곳이 진정한 정상 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사람이 있기에는 너무나도 좁아서 인증샷만 간신히 찍고 내려 왔다.
돌아 나오는길 옆에 누가 그려 넣었는지 인물상이 자리하는데
낙서는 낙서인데 재치와 유머가 돋보인다.
내려 가는 길에서 잠시 쉬면서
건너편 기암괴석을 바라보니 보기에는 좋으나
저쪽 능선으로 가지 않은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드디어 "무너미 고개"가 나온다.
관악산 8봉능선이 내려 앉았다가 다시 솟구친 형상의 "三聖山"과
"冠岳山"이 만나는 지점이다.
생각 보다도 너무나 평범하고 좁은 고개의 모습이 실망 스럽다.
내려 가는길은 평탄했고 주변의 계곡이 바짝 말라 있어
계곡 바닥에 고인 물을 만나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바위 곁에 서있는 풍류에 홀린듯 자유롭게 휘어진
소나무의 멋 스러움도 보면서 계곡의 정취를 마음껏 즐겼다.
서울대학교 건물이 보일 즈음,마지막 선물 처럼 눈앞에 나타난 계곡의 모습은
설악산,지리산도 울고 갈 정도로 크고 우람한 모습이다.
개울물은 플라타너스 잎들이 온통 점령하고 있고
마지막 열정을 뽐내는 단풍의 붉은 물결이 가을임을 실감 하게 한다.
길 옆에 "冠岳山"의 火氣를 누르기 위해 세웠다는 "石狗"가 있는데
너무 비만이라 그런지 내 눈에는 두꺼비로 보인다.
서울대 정문앞 벤치에서 마지막 가는 가을을 아쉬어 하며
플라타너스 잎을 마음에 담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