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0
도초도에 들어가니 비금보다 시금치밭이 많은듯 하다.
"都草島"는 비금도 남쪽에 있는 섬으로 "서남문 대교"로 연결되어 있으며
면적은 41,94km 고 목포 서남쪽 54km 거리에 있다.
신라시대 당나라 와의 무역 기항지로서 당나라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을 때
자기나라 수도와 비슷한 지형 이면서 草木이 무성 하다 하여 "都草"라 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귀양지로 알려 졌으며
흑산도와 중국 장수성을 잇는 상업 통로의 역할을 하였다.
먼저 전남 문화재 자료 제 254호로 지정된 고란리 石장승을 찾았다.
마을의 재앙을 막아 주는 마을 수호 기능을 담당하는데
원래 나무로 만들어 졌으나 1938년 石장승으로 대체 되었다.
재질은 화강암으로 높이 290cm 너비 66cm 두께 40cm 이며
정월 12일 부터 15일 까지 3인의 祭主가 당집에서 근신하다가
보름날 새벽 제사를 모신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길쭉한 얼굴이며 돌출된 눈에 양미간이 좁고
코와 귀가 길게 늘어 졌으며 치아를 드러내고 웃는 형상이다.
소매 자락 아래에 굵은 손이 새겨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신안군에서 제일 넓다는 "고란평야(?)"는 한가롭기 그지없고
드넓은 시금치밭에는 따스한 햋빛이 내려 쏘이고 있다.
이곳은 축사가 많아서 들어가 보니 韓牛들이 수줍어 하며 맞아 준다.
여물을 먹다가 빤히 쳐다보는 순수한 눈빛은
낯설은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 차있다.
주인댁에 가서 커피 한잔 얻어 먹고,뜰에서 노니는 강아지와 눈을 맞춰 본다.
서로 장난을 치고 있는 새끼들을 바라보는 어미의 눈길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枾木"해수욕장에 닿았다.
길이가 2,500m 폭 100m 이며 모래사장이 반원형으로 둥글게 펼쳐져 있다.
주변에 감나무가 많아서 枾木(시목)이라는 이름이 붙여 졌다는데
감나무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흐리면 바위가 움직이는 것같은 착각을 일의키는 바위-
"농간암"이 있다는데 이것 역시 확인이 불가하다.
다음에는 이곳 출신 친구가 추천하는 "門"바위를 찾아 나섰다가
아담하고 비밀스런 해변을 발견(?) 하여 두루 살피고 있는데,
마침 지나치던 주민을 만나 설명을 듣고 나서 다시 길을 찾아 떠났다.
저수지 앞 도로에 차를 세우고 저수지 옆길로 산등성이를 오르자
갑자기 바다가 나타나고 해안 절경이 펼쳐진다.
가까이 내려가자 기다란 바위 사이로 파도가 치는 모습이 장관이며
이 바위를 바다에서 보면 門 사이로 파도가 철석이는 모습일 거라는 생각에
드디어 "門"바위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내려 서니 파도의 세찬 소리가 가슴까지 울리고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의 하얀 포말은 우유를 흘려 놓은듯 하다.
바위 위에서 보니 머리 3개 달린 괴물 같기도 하고
건너 와서 보면 누에의 모습과 흡사한데
파도가 몰아치면 곧 앞으로 나아갈 기세를 보인다.
잠시 앞쪽 해안을 바라보니 누르스름한 색의 斷崖가 펼쳐져 있고
가까이 다가서니 거센 파도가 바위를 타고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눈을 돌려 산기슭을 바라보니 이건 그대로 자연사 박물관이다.
파도에 의한 침식의 영향인지 켜켜이 물결의 흔적이 남아 있다.
표면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색 바위 띠도 있고
둥글게 켜를 지며 깎아 내려가는 바위도 있다.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물결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오른편의 용머리(?) 해안은 파도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을 듯하나
다가서자 더욱 멋진 무늬와 색감을 자랑하고
파도와 싸우면서 점점 더 멋진 모습으로 변해 가는것 같다.
멀리서 다시 한번 용머리(?) 해안을 조망해 보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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