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11
드디어 "창의문"에 도착했으나 성곽은 잠시 단절되었다.
북쪽에서 바라보니 "창의문"이란 편액이 있는데
조선개국당시 건립되어서 양주방면을 오가는 교통로로 이용되다가
태종 16년(1416) 문을 통행하는것이 왕조에 불리하다하여 폐문된다.
"창의문과 숙정문이 지리학상 경복궁의 양 팔이되니 길을 내어
지맥을 손상시키면 안된다."는 풍수상의 이유란다.
그후 1506년 중종때에 다시 통행이 재개되었는데
1623년 인조반정때 이문을 부수고 궁궐에 들어가서
반정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본루는 임진왜란때 불타없어진것을 영조 16년(1740) 다시세우며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적은 판을 걸었는데,
정면 4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이며
서울의 4대문중 완전하게 남아있는 유일한 문이다.
이문은 4대문중 오행상 "금"이고 "서쪽"을 나타내므로
서쪽을 빛나게 한다는 뜻으로 "창의문"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석축의 양쪽에 돌출된 연잎모양의 조각도 있고
중앙에 새를 조각해 놓은것도 있는데
"창의문"밖의 지세가 지네모양이므로 천적인 닭으로 도성을 지키려는 풍수비보책으로 만들어놓은 지붕의 닭조각은 찾지를 못하겠다.
길옆에 피어나기 시작하는 무궁화꽃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담벼락에 기다란 프랭카드같은 것이 걸려있다.
사람얼굴 바탕에 "peace"라는 영문이 쓰여있는데 무언지 모르겠다.
공공의 기억살리기 프로젝트-"인왕산에서 굴러온 바위"라는 작품이
있는데, 둥그런 철구조물속에 조그만 돌멩이들을 여러사람이 쌓아서
공동작품을 만드는 시도인듯하다.
돌을 쌓아달라는 문구도 보인다.
언덕에 오르니 한무리의 사람들이 있고 바닥에 "윤동주시인의 언덕"
이라는 글이 쓰인 천이 널려있다.
사람들속으로 갔더니 "윤동주"시인의 시비 제막식이 막 끝나고
기념촬영이 한창이다.
여기저기에 매달아 놓은 프랑카드가 재미있어 한참을 구경하다가
길을 따라 걸어가니 초소가 나오고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서
철문안으로 들어서니 "인왕산"표지판이 있다.
후덕하게 생긴 인왕산의 바위가 우리를 반겨주고
길로인해 끊겼던 성곽이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