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7
홍도에서 10;40쯤 출발하는 배를 타고 "흑산도"에 도착한 우리는
1박2일에 나온 홍어맛집을 찾았다.
선착장에서 왼편길을 타고 가니 자그마한 포구가 이어지고
포구의 중간쯤 우체국 부근에 "우리식당 할머니집"이 보인다.
7,8,9월 禁漁期라서 싱싱한 홍어는 없다 하시며
돼지 머리고기,홍어 살코기,홍어 코를 차례로 담고 묵은 김치에
"인동주 막걸리"를 곁들여 차려 주시니 "홍탁삼합"이다.
"一鼻"라고 홍어 고기중 으뜸인 코부분을 씹으니
알싸한 냄새와 찌릿한 자극이 온몸에 퍼지면서 속이 개운해 지며,
선홍빛 살코기에 돼지고기,묵은 김치를 얹어 먹고
막걸리를 한사발 들이키니 트림이 나면서 지친 몸을 정화시켜 준다.
혹시 "홍어 애국"을 먹을 수 있느냐고 청했더니
냉장고 깊이 감추어둔 것을 꺼내시는데,무었인지 도통 모르겠다.
더욱 짜릿한 맛을 즐기려고 푸욱- 삵힌 홍어를 주문하자
서비스라며 단 2점을 주시는데, 아까워서 못 먹겠다.
마지막으로 밥과 함께 국이 나오는데
조금전에 보았던 것을 해초와 함께 끓인 것인데,"홍어 알집국"이란다.
마침 커다란 홍어 암컷이 남아 있어 끓여 준다고 하시니 먹을 운이 있나보다.
생선 내장 보다도 고소하고 쫄깃하며 담백한 맛이 난다.
흑산도 일주관광의 첫번째 기착지는 "지석묘군"이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타원형 남방형식의 무덤이다.
줄무늬 빗살토기와 돌창,돌그릇등이 발견 되는등 학술적 가치가 높다.
다음은 "連理枝" 나무다.
왼편의 큰 나무 가지가 오른편의 나무 가지에 붙어 자란다.
보통 연리지는 가까이 있는 나무의 가지나 줄기가 붙어 자라는 것인데
두 나무는 5m 정도 떨어져 있어 신기하다.
"SUPER 連理枝"라고 해야하나 - 좋은 인연을 원하는 연인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氣가 쎈 이곳에서 사랑의 언약을 하기 바란다.
"신들의 정원"에 도착하니 하늘로 뻗어 올라간 소나무가 일품이다.
이곳에는 "鎭里堂"이라는 흑산도 22개 堂山중 최고의 堂이 있다.
堂神이 모셔진 성황堂과 그 앞쪽에 제물을 준비하는 부속건물이 있는 上堂과
바다끝에는 龍神堂이라는 下堂으로 구성 되어 있는데,
예전에는 처녀신을 모시고 매년 정월초에 제사를 지냈으나
20여년 전 부터는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낸다.
당산 주위는 마을 사람들이 매우 신성시 하여
보호 했기 때문에 주변의 나무들이 잘 보전 되고 있는데,
이 동백나무도 그중의 한 나무로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바닷가 언덕에 있는 "龍王(龍神)堂"은 진리당의 下堂으로
어선의 무사고와 풍어를 비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鎭里석탑"과 "石燈"은 상라산성 150m 아래에 자리하는데
서남해 지역에서 유일하게 4각모양의 지붕이 있는 3층 석탑으로
버섯모양의 옥개석(지붕돌)을 갖추고 있다.
높이 190cm 밑기단 폭이 80cm로 그 형식이 매우 특이하다.
남원 실상사 "벽장암"의 3층 석탑과 비슷하며 고려초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이 유실되고 받침돌,지붕돌만 남아있다.
구불구불한 열두고개길을 올라가서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담고
휴게실에서 내려다 보니 아찔한 S자 코스가 펼쳐져 있다.
더 좋은 배경을 위하여 "상라산"에 오르니 "내영산도"와 "외영산도"가
V자 계곡 사이에 절묘하게 자리한다.
고갯마루에서 5분정도 오르니 "상라산(230m)" 정상이다.
발아래 "열두고개"와 "흑산도항"이 평화스럽게 펼쳐져 있고
산성 자락 밑으로 흘러 내리는듯한 커브길이 아찔하다.
"마리"의 "지도바위"다.
처음에는 왜(?) 이름이 "지도바위"인지 잘 몰라서 어리둥절 했는데
바위에 뚫린 구멍이 우리나라 지도와 흡사하다.
반대편에서 보면 거북이가 웅크리고 있는듯 하다.
켄틸레버 공법으로 건설된 교각이 없는 다리형태의 도로인
"하늘도로"를 지나서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며
"長島"를 바라다 본다.
흑산도 서북쪽에 길게 자리한 장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발견된
도서지역 산지습지가 있는데 2004년 8월에 습지보호지역,
2005년 3월에 람샤르 협약 산지습지로 등록되었다.
준수한 3개의 봉우리를 가진 산을 구경하고서
아담한 "심리포구"를 지나니
또 다시 구절양장의 오르막 길이 나온다.
올라서 내려다 보니 열두고개 길 보다도 훨씬 가파르고 스릴이 느껴진다.
길 위쪽에는 일주도로 준공기념비인 "천사상"이 있는데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半男,半女의 중성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왜? 이런 애매 모호하고 서양적인 이미지의 像을 제작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리"에 도착하니 언덕배기에 성당이 있고
바로 앞에 "복성재"가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손암 정약전(1760-1816) 선생이 천주교도 탄압이 있던
신유사옥(1801) 당시 유배되어 개설한 흑산도 최초의 서당이다.
초가지붕이 벗겨지고 문짝이 떨어져 있는등
보존 상태가 최악 이지만,
"사촌서당(沙邨書堂)"이라는 편액이 온전하여 반갑다.
16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학 관계 서적인 "자산어보
(玆山魚譜)"와 "牛耳島" 홍어장수 "문순득"의 파란 만장한 동남아 표류기를
대필한 "표해시말(漂海始末)"을 남겼다.
내려 오는 길에 한적한 농촌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차에 올랐다.
흑산도에서 가장 높다는 "복성재"를 넘을때 안개가 짙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니,조그만 포구를 지날때 바람이 불자
"칠형제 바위"가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 준다.
길옆 커다란 소나무 밑에 면암 "최익현"선생의 유허비가 있다.
선생의 고매한 애국정신과 후학양성을 위한 뜻을 전달하고자
그의 문하생들이 遺墟碑를 세웠으며
비석뒤의 지장암(손바닥바위)에는 우리나라가 자주국가임을 뜻하는
"기봉강산(箕封江山) 홍무일월(洪武日月)"이라는 친필이 새겨져 있다.
마지막 절경은 女子의 그것(?)을 닮았다는 바위다.
나무와 패인 구멍등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이건 쪼끔 너무 노골적이다.
파도가 쳐서 바닷물이 관통하고 나면 더욱 리얼한 모습을 볼 수 있다니
19禁으로 지정 해야할 풍경이다.
이제 구경은 끝나고 돌아가야 할 시간,
우리를 태우고 갈 쾌속선이 정박해 있는 모습을 보니 아쉬운 마음도 든다.
뒤쪽 갑판으로 나가서 바람을 쐬는데 어느덧 배는 "목포항"에 가까이 다가선다.
1박 2일,태풍을 피해 서남해 절경을 돌아본 소중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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