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7
국도 1호선 목포 경계지점에서 우회전하여 1.4Km 진행하니
"초의선사" 탄생지가 나온다.
예전과 달리 주차장과 건물들이 잘 정비 되어 있다.
"大覺門"에서 "艸衣禪師"에 대한 설명을 읽고 들어서니
길 양쪽으로 가지런한 "차밭"과 "봉수산" 앞자락으로 건물들이 배열되어 있다.
"茗禪"이라는 추사 김정희의 글이 비석에 새겨져 있고
바로 옆에 염주와 지팡이를 든 "艸衣禪師" 동상이 근엄하게 서 있다.
오른편 연못의 날렵한 정자와 달리
왼편 언덕에는 아담한 초가로 된 "一枝庵"을 복원해 놓았다.
"艸衣禪師"는 조선 정조 1년(1786) 나주 운흥사로 출가 한뒤 해남 대흥사로 옮겨
"玩虎倫佑大師"의 문하에서 수행 하였으며,
大興寺 제 13대 大宗師로서 종풍을 바로 세웠고 당대 최고의 詩僧(湖南八高)으로
선비들의 尊崇을 받았으며 우리나라 차 문화를 중흥시켜서
"한국의 茶聖"으로 칭송 받고 있다.
가장 뒤쪽 언덕에는 "茶聖寺"를 배치하고
많은 비석 들을 배치 했는데 그 중에서도 "東茶頌"을 새긴 탑이 눈길을 끄나,
아무도 없는곳에 암자와 수많은 비석이 어지럽게 세워져 있어
과연 生家터 복원 사업인지 전시행정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경내 오른편 언덕에는 2층 누각의 "조선차 역사박물관"이 있는데
바깥문에는 초의선사에게 차를 바치는 모습등이 부조 되어 있고
현관 벽에도 차를 따고 가공하는 모습을 담은 부조가 조각되어 있으며,
안쪽에는 차의 역사와 차 도구들이 시대별로 정리되어 있다.
"봉수산"을 오르기 전 바깥의 화장실에 들렀는데 바닥까지 마루판으로 되어 있고
신을 갈아신고 들어 가야 되어서 불편했다.
초입의 계단을 오르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는 평탄한 길이 나오고
길 왼편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표지판을 따라 왼편으로 걸어가자 갑자기 철제 계단(176계단)이 보이는데
상당히 가파르고 눈이 쌓여 있어서 미끄럽다.
계단을 올라서자 사방이 훤히 트여 있어
앞쪽으로 "압해도"와 "목포""압해대교"가 한눈에 들어 온다.
오른편으로 "烽守臺"가 있고 불을 피웠는지 타다 남은 나무가 있으나
"봉수산(250m)"정상의 구조물과 봉수대의 모습이 졸속 이라서 실망감이 앞선다,.
그러나 국도 1호선과 서해안 고속도로,목포 초입의 모습이 보이고
저 멀리 보이는 "압해대교"의 모습은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돌아 서서 왕산리의 바다 풍경도 감상하고 나서 산을 내려 왔다.
조금전 지나쳤던 "金鰲草堂"도 구경하고
茶 박물관에 들어가서
초의선사의 詩를 되뇌어 본다.
오른편 아래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학습실로 내려가니
이곳의 문에도 茶道에 관한 조각이 눈길을 끄는데
찾는이도 거의 없고 굳게 닫힌 모습에 실망감 만 들 뿐이다.
마당 한켠 담벼락에 놓여 있는 平床 같이 커다란 돌도 구경하고
정자 옆에 놓인 돌도 구경하다가
정자 마루에 오르니 연꽃도 져서 스산한 느낌만 든다.
내려 오다가 오른편의 좁은 틈으로 내려가니 生家가 나온다.
고향을 노래한 시비가 한켠에 자리하고
아담한 草家가 단정한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이곳이 "艸衣禪師" 생가터인데 주인공인 生家는 한켠 구석에 자리하고
엉뚱한 기념 건물만 즐비하니,복원이라는 의미가 무었인지 모르겠다.
내려 오는길에 "오승우"미술관에 들러서 "十長生圖" 연작을 감상하고
바닷가로 차를 몰았다.
바다는 잔잔하고 하늘에는 구름이 몇점 떠 있으며
고기잡이 배도 굴 채취선도 작업을 멈추고 있는 모습에 고요함 만이 자리한다.
해안 도로를 가다보니 "押海大橋"가 소나무 가지 사이로 뻗어있고
지는해는 바다 위에 기다란 황금 궤적을 만들어 낸다.
촬영 모드를 석양 모드로 바꾸고 사진을 몇장 찍은 다음
잠시 기다리니 서서히 건너편으로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구름을 배경으로 사진에 담아보고
이번에는 "구슬나무"를 넣고 일반 모드로 석양을 잡아본다.
잠시후 해는 두꺼운 구름속으로 들어 가더니 소식이 없고 바람만 매서워 진다.
다시 석양 모드로 바꾸어 햇살을 잡아보고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