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8
오늘은 먼저 "息營亭"을 찾았다.
흐린 날씨에 갑자기 겨울비 까지 내려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정자의 형태가 "담양"에 있는 정자들과 비슷한 규모와 모습이고
주변보다 약간 높은곳에 위치하여 전망이 확보되어 있다.
"식영정"은 전남 문화재 자료 제 237호로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551에 있는데
閑好 "임연(1589-1648)"선생이 관직을 버리고 말년에 務安에 터를 잡은 후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기 위해 지은 정자다.
현재의 건물은 1983년과 2004년에 고쳐 지은것으로 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정자로 중앙에 방 1칸과 이를 둘러싼 마루로구성되어 있다.
영산강과 그 주변의 경관이 잘 어울려 많은 시인 묵객이 찾아왔던
영산강 유역의 대표 정자 중 하나로,
정자 안에서 정면으로 펼쳐진 영산강과 들판을 바라보기에 알맞다.
계단을 내려와서 잠시 영산강을 바라보고 뒤돌아 나오는데
경로당 옆에 건물이 있어 차를 멈추니 錦南 崔溥의 사적지다.
崔溥(1454-1504)는 "漂海錄"의 저자로 전남 나주태생이며 金宗直의 문하인데
성종 18년 (1487) 추쇄경차관이 되어 제주에 부임 하였다가
부친상으로 귀향하던 길에 태풍을 만나 표류 하던중,중국 절강성 임해현에 도착하여
영파-항주-소주-북경을 거쳐서 6개월 후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성종의 명으로 "표해록"을 저술하여 15세기 당시 명나라 문물과
사회상 등을 소개하였고 특히 중국에서 들여온 水車 제작과 이용법을 지도하여
충청도 지방 가뭄해소에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다.
연산군 4년 (1498) 戊午士禍로 함경도 단천에 유배 되었다가
50세인 연산군 10년(1504) 甲子士禍 때에 斬刑을 당했다.
저서로는 "漂海錄"과 "錦南集" 등이 있고
현재의 묘는 해남에서 1974년 이장하여 조성 하였다.
다음에는 물어 물어서 "總持寺址 석장승"을 찾아 나섰다.
무안 학생의 집에서 읍내 방향으로 가다보니 길 양쪽에 장승이 있다.
(무안군 몽탄면 대치리 543-1)
왼편의 장승은 기다란 얼굴에 왕방울 만한 커다란 눈과 주먹 만한 코를 가졌고
오른편 장승은 뾰족한 머리에 넓적한 얼굴인데 외계인 같은 모습이다.
두개 모두 얼굴만 조각되어 있고 높이는 1.2m 정도로 작은데
이 장승들은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는 마을 뒤쪽에 있던
"總持寺"란 절 입구에 세워저
재액과 잡귀를 막는 수문장 역할을 했을것 으로 추정된다.
다음에는 천연기념물인 팽나무를 찾아 갔다.
국도 1호선에서 읍내로 가는 길가(청계면 청천리 362) 오른편에 있는데
이곳의 나무들이 언제 심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대략 500여년 전 이 마을에 달성 배씨 배희가 들어와 자리잡고
자손을 번창 시키고자 하였으나,서해의 해풍이 불어와
집은 물론 농사에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고민하던 어느날,
한 나그네가 지나가는 말로 마을 앞에 팽나무와 개서어나무를 심으면 될것이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100여 그루의 나무를 구하여 심었고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서 바다바람을 막아주자
자손도 늘고 마을도 번창하게 되었다고 한다.
팽나무 54 루 느티나무 60여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으며
나무의 둘레는 평균 3m 높이는 30m 이다.
그런데 가운데에 설치된 정자 지붕이 나무 밑둥에 양쪽 모두 걸쳐있어서
이 나무들이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지 의심 스럽다.
이제 마지막 답사지인 "務安鄕校"를 찾았다.
"무안 북중"뒤편 무안읍 교촌리 260-1 에 있는데 "下馬碑"가 특이하게 생겼다.
"外三門" 옆에 별도로 "三鋼門"이 있고
"外三門"을 지나자
건물 사이로 오르는 돌계단이 나타난다.
계단을 오르니 좁은 건물 사이로 지붕만 보이더니
마당에 들어서자 커다란 은행나무 뒤로 건물이 배치되는
반전이 연출 된다.
이 향교는 조선 태조가 1398년 전국에 지은 향교 보다 빠른 1394년
공수산 서원에 세워 졌는데, 매년 1월 1일 제사를 지낼대 마다
사람이 한명씩 호랑이 한테 잡아 먹혀서
77년 뒤인 성종 원년(1470)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한다.
明倫堂 왼편에 西齊가 있고
오른편에 東齊가 있으며
明倫堂 왼편에 東別堂,오른편에 藏書齊가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다.
은행나무 양편으로 나뉘어진 계단을 오르면 內三門이 있는데
수령이 약 600년 된 은행나무 만이 역사를 전해 주는듯 하다.
계단을 오르다 보니 "선운사" 입구의 은행나무에서 보았던 "乳柱"가 있는데
기러기 모양으로 특이하게 생겼다.
맨 위쪽 "大成殿"에는 5성과 중국 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 되어 있고
봄,가을로 석전제를 지낸다고 한다.
외삼문으로 내려 오는 공간의 조형미를 잠시 감상 하고서 향교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