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31
천왕문을 나서자 "팔상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국보 제 55호인 이탑은 유일한 목조 5층탑으로 높이가 22.7m 인데
정유재란때 불에 탄것을 선조 38년(1605)- 인조 4년(1626)에 완성하고
1968년에 해체 복원하여 지금에 이른다.
벽의 사방에 각면 2개씩 모두 8개의 "변상도"- 석가모니의 일생을 표현한 그림이
그려져있어 "팔상전"이라한다.
정사각형의 돌로 만든 기단부위에 목조로 5층 탑신부를 잡고 위쪽에
철제로 만든 상륜부를 두고있는데,
1.2층은 정면과 측면이 5칸,3.4층은 3칸,5층은 2칸이다.
내부 가운데 심초석에 심주를 세워서 상륜부까지 통하는 구조로
가장 높으며 하나뿐인 목조탑이다.
"쌍사자석등"은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사자조각 유물중 가장 오래되고 뛰어나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8각이며 4곳에 창을 내었는데
보통 8각기둥을 사용하던것에비해 두마리의 사자를 조각한 기법이
당시로는 획기적인 시도라고 하겠다.
"대웅보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석가여래"와 "노사나불"이 협시한
삼신불(보물 1360호)을 봉안했는데,
1624년 대웅보전을 중창하면서 조성된것으로 보이며
높이 550cm 허리둘레 390cm 인 흙으로 빚은 우리나라 소조불상 중 가장 크다.
삼신불 뒤에는 세로 616cm 가로 348cm의 커다란 종이에 족자로
이루어진 "삼신불후불탱화"를 봉안했는데 1925년 보응,문성스님등이 그렸다.
지금의 건물은 2005년 4년간의 공사끝에 "벽암대사"가 중창한 이후
400년만에 옜모습 그대로 원형복원한 것으로,
보물 제 915호이며 앞면 7칸 옆면 4칸의 2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고려중기 건물로 추정되는데 창건당시는 미륵장륙상을 모신 "용화보전"이있어
미륵신앙도량의 중심역할을 했을것이다.
인조 2년(1624) 중건하였으며 조선중기 양식을 잘 갖추고 있고,
"마곡사" 대웅전,"무량사" 극락전,"화엄사"극락전과 함께
2층전각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다.
"희견보살상"은 두툼한 판석과 커다란 그릇을 머리에 이고있는
모습인데, 보물 제 417호이다.
높이는 2m이며 법화경을 공양하기위해 스스로 몸과 팔을 불태워
소신공양을 올렸다는 보살상이다.
대좌에서 머리위 판석까지 하나의 돌에 조각했으며 향로만이
다른돌로 되어있다.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선이 굵고 대담한 기법이 돋보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석상은 "가섭존자"라는 견해도 있다.
"가섭존자"는 석가가 입면한 이후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열반에 들지말고 세상에 남아,
가사와 발우를 전하라는 석가여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인데,
미륵불에 전할 가사와 발우를 머리에 이고있는 모습을 형상화하여
"가섭봉발가사탑"이라는 이견도 있다.
보물 제 916호인 "원통보전"은 2.8m의 금색 목조 관세음보살상을 모셨는데,
앞면.옆면이 3칸인 정사각형 건물이며 중앙에서 4면으로 똑같이
경사가 진 "사모지붕"을 가진것이 특이하다.
앞과 오른쪽 기단은 3단이고 뒤와 왼쪽 기단은 2단인데
마당이 높아져서 앞쪽은 2단,나머지는 1단만 드러나있다.
모든것이 크고 높은 "법주사"를 둘러보고 나가는데
오른편 언덕에 역시나 커다란 고사목이 눈길을 끌고
당간지주 오른편에는 마치 누군가 일부러 가져다가 놓은듯한
거대한 바위 3개가 놓여있고 한편에 "마애여래"가 새겨져있다.
"마애여래의상"은 보물 제216호로 고려시대 불상인데
높이가 5m 연화대좌석 높이가 2.84m 평면연화석 폭이 2.27m이다.
머리가 보기드문 "나발"로 되어있다.
왼쪽 아래에
1.말과 말을 끄는 사람과- 창건주 의신조사가 인도에서 경전을 싣고 돌아와
법주사를 창건했다는 설화와
2.말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소의 모습이- 중흥조 진표율사가 금산사를
나와 법주사로 가는 도중에 소가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는 설화가
음각 되어있어, 예술적으로는 그리 우수하지 못한 암각화이나
절의 구심점인 미륵불과 창건신화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불경이 새겨진 거대한 바위위로 새하얀 구름한점이 -
모든 세상사 벗어 버리라는듯 흐르며
부도탑뒤의 바위위에는 생명의 경이를 보여주는듯
고목이 당당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오른편길을 걸어내려오니
우거진 나무들과 시야를 막는 바위뒤로 보이는 밝은 건물의 모습이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정이품송"은 1962년 천연기념물 제 103호로 지정되었는데,
1464년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할때에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서 어가를 무사히 통과하게 했다하여 정 2품의 벼슬을 얻었다.
속리산 국립공원의 수문장역할을 하는데
수령은 약 600년 정도이며 높이가 15m 가슴높이둘레 4.5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쪽 10.3m 서쪽 9.6m 남쪽 9.1m 북쪽 10m에 이른다.
지금은 병충해의 피해로 반쪽이 되어있어 안타깝다.
그늘에서 잠시 쉬다가 서울로 향했다.
* 법주사 ; 충청도 보은군 석리산면 사내리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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