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남도답사

光州 유람 2

winwin55 2015. 5. 28. 11:49

2015.05.25

 

아침을 먹고 친구집을 나선 나는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

"민주의 문"을 지나자

TV화면에만 보았던 "5.18민주항쟁 추모탑"이 보인다.

도청 함락 마지막날에 산화한 고교선배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니

오래된 묵은 숙제를 마친것 처럼 마음이 홀가분 하다.

 

묘소를 한바퀴 둘러 보고

높이 40M의 웅장한 추모탑 앞에 섰다.

"5.18민주화운동"희생자의 혼령이 새생명으로 부활하는 소망을 담은

중앙의 조형물 "난형환조"를 한참 바라 보다가

묘지 좌.우를 오가며 아쉬움을 사진에 담아 본다.

버스가 시내에 이르자 옛적 수도원을 보려고 내렸다.

옛 교정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조금 낯설지만

옛 운동장 쪽에서 바라 보니 수도원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 오른다.

최근에 세워진 "돈보스코"像을 잠시 바라 보다가 앞 길로 나오니

"굴다리"가 보인다.

학창시절 7년 동안 드나들었던 곳이라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에 담아 본다.

날시가 상당히 더웠으나 점심은 충파옆 모밀집에서 "溫모밀"을 먹었다.

옛 추억의 맛이라 그런지 금방 한그릇을 비우고도 허기가 진다.

"광주천"을 건너서 "光州鄕校"를 찾았다.

조선 태조가 1392년 각 道의 안찰사에게 교육을 개혁하라는 명을 내린것을 계기로

瑞石山(무등산) 서쪽 壯元峰 아래에 세웠으나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서 城의 동문 안으로 옮겨 지었다.

성종 19년(1488) 현감 "권수평"이 지대가 낮고 수해가 자주 일어나서

지금의 자리에 옮겨 지었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때 왜적들에 의해 불탄것을 선조 33년(1600)

官과 백성이 협력하여 다시 세우고 그 뒤 수차례보수를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大成殿,東무,西무,明倫堂,東齋,西齋,內.外三門을 기본 구조로 하고

文會齋,養士齋,유림회관,충효교육관 으로 되어 있다.

孔子,顔子,曾子,子思子,孟子등 5聖과 송나라 2賢과

우리나라 18賢등 25聖賢을 모시고 봄,가을에 제사를 모신다.

향교를 넘어서 공원에 이르니

고교시절 일요일이면 청소봉사를 했던 "현충탑"이 반갑고

"聖居寺址 5층석탑"이 보인다.

보물 제109호로 고려 전기의 석탑인데,이곳은 원래 聖居山이라 불렸으며

산의 모양이 거북처럼 생겼으므로 光州를 떠나지 못하게

등 위치에 聖居寺를 세우고 목 부근에 5층 석탑을 세웠다 한다.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세운 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2단 기단 양식에서

1단만 두는 고려시대로의 양식변화를 보여 준다.

지붕틀 추녀와 몸돌의 알맞은 비례감과 위로 오르면서 줄어드는 비율이 크지 않아

전체적으로 높게 보이면서도 안정감이 있다.

1층 몸돌 전체를 아래 위 2단으로 나누어 5개의 돌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나타나는 특색이고 지붕틀 밑면의 받침은 4단이고

각 귀퉁이는 아래 위 모두 약간씩 치켜 올려진 상태이다.

1961년 해체하여 보수 할때 2층 몸돌에서 사리공과 사리장엄구가 발견 되었으며

1층 몸돌과 3층 몸돌은 보수할 당시에 보충한 것이다.

시내로 오는길에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을 찾았다.

1929년 11월 3일부터 이듬해 3월말 까지약 5개월간 194개 학교 54,000명이 참가한

반일 민족독립을 절규하던 민족 해방운동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0년대 학생운동의 한 정점이며 일제강점기 최대규모의 항일학생운동 이다.

1953년부터 11월3일을 "학생의 날"로 정해서 광주학생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고 있으며,이곳의 탑은 운동에 참여하여 구속되고 고문당한

"광주농고"학생들을 기리고자 1954년 "광주제일고"총동창회에서

제일고 교정에 세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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