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3
이곳은 후원의 첫번째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
300평 넓이의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여러 건물이 있는데
바로 옆에 사방으로 날아 오를 듯한 건물이 "부용정"이다.
"사정기비각"이 수줍은듯 나무 뒤에 숨어있고
"부용정"도 고운 자태를 숨기고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왕이 과거에 급제한 이들에게 주연을 베풀어
축하해 주던 장소이다.
동서로 34.5m 남북으로 29.6m 네모 반듯한 연못 중앙에 둥근섬이 있는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사상을 반영했다.
"부용정"은 열십자 모양의 정자로 정면 5칸, 측면 4칸, 배면 3칸이며
초석 2개를 연못에 두고있고, 창을 들쇠에 매달면 정자는 사방으로
트이게 되는 독특한 구조다.
숙종 33년(1707) "택수재"를 지었다가 정조 16년(1792) 부용지를
고치면서 "부용정"이라 불렀다.
"주합루"는 정조가 즉위한 1776년에 창건한 2층누각인데
아래층에는 왕실 직속 도서관인 "규장각"을, 위층에는 열람실겸 누마루를 만들었다.
높은 언덕위에있는 주합루로 오르는 정문이 "어수문"인데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격언과 같이 "통치자는 항상 백성을 생각하라"는 교훈이 담긴 문이다.
큰 문 하나와 좌우로 작은 문 두개로 나누어진 모습이 특이하다.
"부용정"의 멋진 모습을 다시한번 담아보고
"영화당"을 살펴본다.
이곳에서는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했는데
동쪽으로는 "춘당대"마당을 서쪽으로는 "부용지"를 마주하며
앞뒤에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이다.
휴식을 취하던 "부용정"은 연못에 발을 담그고 있는 형상이고
행사가 치러지던 "영화당"은 연못에 면해있으며
학문을 연마하던 "주합루"는 높은곳에서 연못을 내려다 보고 있다.
하나 하나 특색있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서로에게 풍경이 되는 절묘한 경관을 보여주는 곳이다.
"의두합"은 순조 27년(1827) "효명세자"가 지은건물로 "기오헌"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4칸의 단출한 서재로 단청이 없는 소박한 건물이다.
바로 옆의 "운경거"는 궐안에서 가장 작은 한칸 반 짜리 건물이고
"의두합"과 함께 북향으로 지은 유일한 건물이다.
"애련지"는 연꽃을 좋아하던 숙종이 1629년 연못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섬은 없고 연못 북쪽 끝에 정자가 걸쳐있다.
숙종이 정자에 "애련"이라는 이름을 붙여 연못은 "애련지"가 되었다.
"애련지"왼편 앞쪽에 "불로문"이라 새겨진 아치형의 돌로된 문이 특이하다.
"연경당"에 갔으나 관람금지 구역이라 볼 수없다.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7년(순조 27) 창건했고,
지금 건물은 고종이 1865년쯤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으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일반 민가가 99칸으로 제한된 데 비해 120여 칸으로 지어졌다.
고종이후 외국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왕실 서고였던 "규장각"과 "봉모당"사이 길옆에 향나무가있다.
천연기념물 제 194호인데 수령은 7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6m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4.3m이다.
가지는 동쪽 5.5m 서쪽으로 6m 남쪽 2m 북쪽으로 3.5m 뻗어있다.
"봉모당"은 조선후기 규장각의 역대 선왕의 글과 글씨, 책등 유품을
보관하던 전각으로,원래 후원에 있었으나 순종때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왕과 왕실을 보좌하는 궐내 관청인 "궐내각사"도 관람 금지구역이다.
가운데로 흐르는 금천을 경계로 동편에 내의원,옥당(홍문관),예문관이
서편에 규장각,봉모당,대유재,소유재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일제때 규장각과 봉모제등 모든 전각들이 헐리고 도로와 잔디밭으로 변했으며,
지금 건물들은 1991년 - 2005년에 복원한 것이다.
"궐 내각사"지붕위로 의연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인정전"을 바라보며,
숱한 훼손을 견뎌내고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이 잘 보존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