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05
봄이 오는 소리에 "나주"로 향했다.
먼저 "나주 곰탕"으로 허기를 채우는데
맑고 조금 짭잘한 장국에 부드러운 소고기를 밥과 함께 먹으니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고나 할까?- 아뭏든 맛이 있다.
개방된 주방에는 가마솥이 올려져 있는데 가스불이 아니고 장작불로
요리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지만 - 지나친 욕심인듯하다.
"錦城館"을 찾아가니 外三門인 "망화루"가 날렵하게 서서 우리를 맞이하고,
문을 지나 들어서니 中三門이 다시 한번 검문을 한다.
두번의 검문을 받고 들어서니 앞쪽에 3채의 건물이 연이어 늘어서 있다.
좌,우측이 비대칭으로 중앙이 "금성관" 좌측건물이 "서익헌"
우측 건물이 "벽오헌(동익헌)"이다.
이곳은 나주목의 객사로 관찰사가 업무를 보던곳이며
중앙의 사신이 지방에 오면 묵었던 곳으로,
일제때 동.서익헌과 망화루가 철거되고 금성관이 개조되어 군청사로 쓰였었다.
담벼락의 아름드리 나무를 보호 하기 위해서 둥글게 돌려진 담장의 모습과
막돌을 다듬어서 주춧돌로 활용한 모습에서
조상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느낄 수 있고,
완벽한 대칭의 미를 보여주는 창호와
천정의 야무지고 세련된 배치에서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굳은 기개를 느낄 수 있다.
한켠에 있는 공덕비에서 이곳을 거쳐간 이들의 이력을 들여다보고
다시 한번 건물 전체를 조망해 본다.
집무실인 "금성관"은 칸 넓이나 높이가 다른 건물 보다 커서
정청으로서의 위엄을 보여주며,공포는 주심포계 익공형으로 화려하다.
내부는 모두 대청으로 꾸몄고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약간의 배흘림을 둔 두리기둥을 세워서 미끈한 모습이다.
다음에는 "琴鶴軒"을 찾았다.
담장을 뚫어버린 거대한 고목이 눈길을 끄는 한옥인데,
조선시대 나주목사가 기거하던 살림집으로
상류주택의 안채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객사 "금성관"과 동헌의 출입문인 "정수루"와 함께
원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역사 자료이다.
일제때 군수 관사로 사용하며 원형이 변형되었으나
최근에 복원하여 한옥 체험관으로 운영중이다.
거대한 고목은 벼락맞은 팽나무로 수령은 500여년 인데
벼락맞은 나무는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큰 행운을 가져다 주는
신령스런 기운을 지니고 있으므로
간절한 바램을 나무에게 이야기하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헌의 출입문인 "正綏樓"를 둘러보고
향교를 향해 가는데 건물 한 귀퉁이에 "의열문"이 보인다.
주위에 과일상자와 쓰레기 봉투가 놓여있어
조상의 유물이 천대 받고 있는 느낌이 들어 서글프다.
노인회 건물과 주택 사이에는 400년된 노송이 자리하는데
용틀임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는것이 "나주"의 무게감을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