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06
대웅전 뒤편 오른쪽에는 보물 제 158호인 "普照禪師 彰聖塔碑"가 있다.
통일신라 헌강왕 10년(884) 만들어 진것으로 비문은 "김영"이 지었고
7행의 禪자 까지는 "김원"이 해서체로 그 이하는 "김언경(김수종)"이 행서체로 썼다.
지붕 덮개돌에도 연꽃잎 무늬와 구름무늬를 가는 선으로 새겼으며
거북받침 대좌는 목을 꼿꼿하게 세운 용의 머리처럼 하였고
등에는 6각의 거북등 모양으로 장식 했으며
碑의 받침 주위로 구름무늬와 당초무늬를 새겼다.
비의 각 부분이 완전하고 규모 또한 3.46m로 커서 당시 石碑의 대표작이라 하겠다.
탑비 왼쪽편 산기슭에는 목이 없는 입상이 있고
그 옆에는 보물 제 157호인 "보조선사 창성탑"이 있다.
팔각 원당형으로 8각의 지대석에는 얕은 괴임이 있고 그 위에 8각의 하대석이
이중으로 놓여 있으며,중대석의 각 면에는 네모꼴에 가까운 眼象을 이중으로
조각했고,상대석은 8잎의 연꽃잎을 새겼다.
지붕돌은 기왓골이 새겨져 있고 부도의 꼭대기에는 覆鉢 과 寶輪,寶珠가
차례로 놓여 있으며 높이는 3.7m에 이른다.
몸체돌에는 열쇠를 채운 문짝 모양 좌우에 신장상을 새겼고
보조선사가 입적한 4년뒤(884) 탑비가 건립 되었으므로
창성탑의 건립시기도 이 무렵으로 추정된다.
내려가서 대웅전에 들어 가려는데 출입문이 안 보인다.
왼편쪽에만 출입문이 있는 특이한 구조다.
어느덧 해는 기울어가는지 고목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앞 마당의 따스한 햇살과 고즈녁함을 느끼면서
다시 한번 대웅전 오른편을 살피니 "冥府殿"의 지붕이 특이하다.
용마루 중앙에 화병 모양이 있고 남북 방향으로 용이 얹혀져 있다.
기와의 색도 약간 갈색을 띄고 있는데 그 연유를 잘 모르겠다.
앞 마당의 샘에서 흘러 나오는 감로수로 목을 적시고
"범종각"도 구경하면서 마당을 나왔다.
"사천왕문"을 나서기 전에 물러남을 고하고 "西浮屠"를 찾아 나섰다.
안내도를 보고 절의 왼편쪽 산길로 접어 들었으나
장흥의 특산품인 표고버섯 재배지만 있고 "서부도"는 오리무중이다.
포기 하려다가 물어 물어 찾아가니 "서부도"는 "보림사" 왼편길로 가다가
삼거리 못미쳐서 좌측 마을길로 들어서니 마을 동산에 자리하고 있다.
"팔각 원당형" 부도 2기가 있는데 보물 제 156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나는 네모꼴 지대석위에 8잎의 覆蓮(연꽃 부리가 아래를 향한 모양)을
겹쳐서 표현하고, 상대석은 8잎의 仰蓮(연꽃 부리가 위를 향한 모양)을 새겼다.
몸체돌은 1단의 받침이 있고 지붕돌은 약간 좁고 경사가 급하며
추녀끝의 꽃장식이 없다.
꼭대기에는 원형의 복발위로 구름무늬와 연꽃잎이 새겨진 크고 작은
보주를 올렸으며 높이는 3.6m에 이른다.
다른 하나에도 몸체 부분의 한면에는 열쇠가 잠긴 문짝 모양이 있는데
지붕돌은 추녀가 대부분 파손 되었고 경사가 급하다.
꼭대기에는 보개,보륜,보주가 얹혀 있으며 높이는 3.2m이고
하대석 각 판의 끝부분에 귀꽃이 있고 밑에는 얕은 면을 돌려 8각을 이룬다.
2기 모두 고려 중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용문대교"에서 바라보는 "탐진강"은 지는 햇살을 받아 눈부시고
"탐진호"의 넉넉한 풍경은 오늘 하루의 유람을 마무리 해 주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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