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06
"동백꽃"을 보려고 "천관산 장불재"에 갔더니 주차장옆 화장실앞에
이정표가 있어 휴양림 방향으로 가다가 "娥池"를 발견했다.
고려 17대 仁宗왕비 "공예태후 임씨"의 탄신지인 관산읍 옥당리 당동마을
앞에 있는 연못이다.
천관산 구룡봉에 올라 소변을 보니 산 아래가 바다로 변하였고
바다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용을 잡으려 했다는 언니의 꿈 이야기를
비단을 주고 사서 왕비가 되었는데, 꿈을 팔아버린 언니가
슬픔과 허탈감에 연못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슬픈 전설이 서린곳이다.
"각시소"라고도 불리며 2004년 현재 모습으로 복원하였는데
네모 반듯하고 깊이가 너무 얕아서 전설을 떠 올리기에는 미흡하다.
동백 군락지는 휴양림 가는길 왼편 아래 계곡에 있었다.
멋진 2층 전망대에 올라서 내려다 보니
아직 스산한 겨울 풍경 뿐- 동백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내려가서 살펴 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여서 허탈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행선지를 "보림사"로 잡았다.
먼저 양지 바른 언덕에 "東浮屠"가 보인다.
보물 제155호로 높이가 3.6m이며 기단,몸체돌,지붕돌이 모두 8각인
"八角圓堂型"으로 하대석과 상대석은 반구형으로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입체적인 면이 부족하나 조각수법이 세련되었고 꼭대기 부분에 寶輪과
두겹의 연꽃위에 寶珠가 얹혀 있는등 장식이 완전하게 남아있다.
다른 "부도"들은 예술성이 조금 부족한듯 하지만
자연석을 지대석으로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寶林寺"는 생각과 달리 넓은 개활지에 자리하고 있다.
"迦智山 寶林寺"는 동양 3보림(인도,중국,한국)의 하나로 禪宗 宗刹이다.
759년 원표대덕께서 터를 잡아 가지사를 창건한 이래 迦智山門의 선풍을
크게 떨치자,신라 경덕왕이 교지를 내려 가람의 구성을 확정하고
천칸의 佛宮을 세웠으며 헌강왕이 사호를 "보림사"라 함과 동시에
동국 선종의 종찰임을 인정 했다한다.
고려때는 "圓應 學一"국사와 "太古 普愚"국사가 駐錫으로 머물며
크게 융성했으며,조선시대에도 1515년 사천왕상을 조성하고 전각을 중창하였다.
6.25때 外護門과 사천왕문을 제외한 모든 전각이 소실되자 청담,경산등이
중창을 시도 하였고, 현광선사가 1982년부터 대웅보전,대적광전,선원등을
차례로 복원하여 옜 모습을 찾아 가고 있다.
화려한 공포장식이 돋보이는 외호문을 들어서니
마당 끄트머리에 四天王門이 보이고, 그 뒤로 탑과 전각들이 자리한다.
보물 제 1254호인 四天王은 동서남북의 四天國을 다스리는 불법 수호신으로
"東方 持國天王"은 비파를 들고 미소를 띄고 있고
"南方 增長天王"은 분노한 표정으로 보검을 들고 있고
"西方 廣目天王"은 근엄한 표정으로 칼과 짧은 창을 잡고 있고
"北方 多聞天王"은 부릅뜬 눈에 입을 벌리고 깃발을 들고 있다.
중종 10년(1515)에 만들어 진것으로 가장 오래된 사천왕상이며
조각이 우수하여 조선시대 사천왕상의 본보기가 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사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니 전면에 "大寂光殿"이 보이고
오른편으로 대웅전과 종각등이 "迦智山"자락에 고요히 자리한다.
"대적광전"앞에는 남북으로 나란히 2기의 3층 석탑과 그 사이에 석등이 있는데
국보 제 44호로 지정되어 관리 되고있다.
1934년 복원할 때 탑의 1층 사리구멍에서 사리와 함께 탑지가 나와서
신라 경문왕 10년(870) 조성 되었음이 밝혀졌다.
남탑이 5.4m 북탑이 5.9m 인데 석가탑과 비슷하나
꼭대기의 탑륜 장식이 화려하며 보존상태가 우수하다.
석등은 부처님의 빛을 사방으로 비춘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기단,몸체돌,지붕틀이 모두 8각이며 각부의 비례및 조화가 빼어나고
완벽하게 보존되어 귀중한 자료이다.
"大寂光殿"에는 "鐵造 毘盧舍那佛 坐像"이 모셔져 있는데
국보 제 117호이며 높이는 2.51m 이다.
부처가 설법한 진리가 태양의 빛처럼 우주에 가득 비추는 것을 형상화한 불상으로
불교의 진리 자체를 상징하며 "法身佛"이라고도 한다.
작은 손과 상체에 비해 무릎이 크고 법의는 비교적 두터우며
느슨 하면서도 얇게 빚은 듯한 옷주름 등에서 9세기 후반의 불상양식 특징이 보인다.
왼쪽 팔 뒷면에 大中 二年이라는 글이 있어 신라 헌완왕 2년(858)에
조성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하대의 철조불상의 대표작이며 조성연대가 확실 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2층 누각 형태의 "대웅보전"을 지나니
키가 큰 소나무앞에 "彌陀殿"이 보인다.
살며시 문틈으로 들여다 보니 예상외로 석불이 모셔져 있다.
"傳義湘庵址 石佛立像"은 전남 유형문화재 제 191호인데
원래 제암산 중턱의 의상암이라는 절터에 있던것을 1994년 이전 하였단다.
광배가 훼손되고 목 부분이 보수 되었으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얼굴에 비해"육계(불상 머리위에 깨달음과 지혜를 상징한다는 혹처럼 볼록한 것)"
가 높은 편이고 눈과 입술이 갸름하다.
왼손이 훼손 되었으나 오른손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어 "彌陀定印"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1,83m 이고 통일신라 말기 작품으로 추정 된다.
뒷산에는 "비자나무"숲과 녹차밭이 있으나 겨울 가뭄과 냉해로
푸르른 기운이 쇠락하여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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