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30
민속공연이 끝난뒤 "용장산성터"를 찾았다.
입구에 주차장이 조성되고 기념관및 "대몽 항쟁 기념탑"도 있다.
기념관 바로뒤에 있는 "용장사"에 오르니
기와와 고무대야로 만들어진 멋진 화단을 볼 수가 있다.
"약사전"에는 석불좌상이 모셔져 있는데,
고려시대 약사불상으로 전남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사각형 대좌위에 광배를 등에 지고 있는 모습이며 지장보살 처럼 민머리를 하고있다.
오른손을 내리고(觸地印) 무릎위에 올린 왼손에는 약그릇이 들려 있는데
하체가 너무 커서 비례감이 떨어지는 고려불상의 특징을 보여 준다.
좌우로 서있는 두 보살상은 본존불과 비슷한 인상인데 상체는 벗고
하체는 군의(긴 치마모양의 옷)를 입은 신라식 보살상의 모습이다.
좌측 불상은 1.6m 우측은 1.7m 정도인데 본존불과 마찬가지로
얼굴이 시멘트로 보수되어 원형을 알기 어렵다.
조그만 다리를 건너자 눈앞에 "삼별초"가 머물렀던 행궁터가 보인다.
"三別抄"는 고려시대 최씨 무인 정권의 특수 사병부대인 "左別抄"와 "右別抄"
그리고 몽고 포로였다가 탈출한 군사들인 "神義軍"을 말한다.
"高麗史"를 편찬한 역사가들이 주동자인 "배중손"을 反逆傳에 넣고
"삼별초의 난"으로 기록했으나 1977년 이후 삼별초의 호국정신이
재평가되면서 "삼별초의 항쟁"으로 기록 되었다.
입구에는 잘 조성된 우믈이 있는데 아직도 마르지 않아서
그들의 항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듯 하다.
들어서니 석축이 계단식으로 가지런하고 직사각형의 건물터가 보인다.
석축과 석축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고
한칸을 오르자 다시 석축이 가지런히 계단식으로 보인다.
이곳은 현재 발굴 조사중인듯 한데
주춧돌과 기단의 모습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상층부에 올라서 내려다 보니 정리된 행궁터 아래로 저수지와
그 너머의 산세가 부드럽고도 리드미컬 하다.
맨 위는 주춧돌의 흔적만이 보이는데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아늑한 느낌이 든다.
좌측편으로 돌아 나오는데 깊게 파인 곳도 있고
위보다 더 깊게 파인 곳도 있는데 무었인지는 모르겠다.
동구랗고 네모난 주춧돌 인듯한 돌을 지나서
왼편을 살펴보니 석축이 더 높고 가파르다.
높이가 낮은 땅에 석축을 쌓아서 알뜰하게 땅을 만든듯 하다.
높이가 낮아짐에 따라 석축도 낮아 지는 모습이 뚜렸한데
여기에도 직사각형의 건물터가 보인다.
우측편의 산자락까지 석축을 쌓아서 공간을 활용한 알뜰함도 보이는데,
좌측은 석축을 높고 길게 쌓아서 균형을 맞추었다.
아래로 내려 올수록 석축의 높이가 낮아져서 균형을 이루고
입구 좌측 낮은 부분을 높이 올려서 공간을 잘 활용한듯 하다.
피난터에서 조성한 석축이라 그런지 자연석을 이용하여 조성되었으나
소박하면서도 튼튼한 모습에서 그들의 抗蒙精神이 느껴진다.
* 사적 제 126호인 龍藏山城은 행궁터를 감싸는 능선에 있는데
고려 원종 11년(1270년) 고려정부가 몽고와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개경 환도를 강행하자,이에 불복하여 대몽항쟁을 결의한 삼별초군이
원종의 6촌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강화에서 남하하여
대몽항쟁(1270-1271)의 근거지로 삼은곳 이다.
둘레가 약 13Km에 이르며 산성안에는 석축이 웅장한 계단 형상의
행궁터가 남아있다.
'가족 여행 > 남도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성암 (0) | 2011.05.12 |
---|---|
청산도 (0) | 2011.05.12 |
제 479회 진도 토요 민속여행(아리랑의 곡절) (0) | 2011.05.03 |
임자도(튤립축제) (0) | 2011.04.18 |
진도 2(신비의 바닷길2) (0) | 2011.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