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4
行宮에 도착하니 거대한 느티나무 사이로 정문인 "新豊樓"가 보이고
"左翊門"과
"中陽門"을 지나니
正堂인 "奉壽堂"이 나온다.
정조가 수원 행차시 머물렀던 곳으로
평상시에는 "수원유수부"로써 유수(도지사급)가 업무를 보던곳이다.
오른편 문으로 나가니
정조대왕이 왕위에서 물러나 수원에서의 노후생활을 꿈꾸며 지었다는
"老來堂"이 있고
이어서 "洛南軒"이 있다.
각종 행사를 진행하는 건물로 화성행궁 부속 건물중
파괴되지 않고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유일한 건물이며
1795년 "혜경궁 홍씨"회갑연 기간중 여러 행사를 치뤘던 곳이다.
낙남헌 앞쪽에 있는 "華寧殿"은 사적 제 115호로 순조 원년(1801)
정조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화성행궁 옆에 세운 정조의 影殿이다.
선왕의 초상화를 모셔 놓고 살아 있을때와 같이 봉안 하는곳으로
조선 후기의 대표적 건물이며 正殿인 "雲漢閣"에는
융복(군복)을 입은 초상화가 봉안 되어 있다.
사회의 풍속과 기강을 교화 한다는 뜻을 가졌으며
제를 지내는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인 "風化堂"을 보고서
입구로 나오니 "제정"이 있다.
화령전의 제례에 사용되는 정화수를 뜨는 우물로 "御井"이라고도 한다.
정방형으로 각 방향에 14개(4면 56개)의 장대석을 쌓았으며
높이 5,5m 물 높이 약 4m 에 이른다.
낙남헌의 오른편으로 돌아 가니
"得中亭"이 있다.
활을 쏘기 위해서 세운 정자로 정조대왕이 직접 편액을 써서 걸었는데
정조 14년(1790) 4발을 쏘아서 4발을 모두 맞힌것을 기념하여
군사들을 회식시키고 특별 과거시험을 치러서 합격증을 주는 행사를 가졌던 곳이다.
봉수당 왼편에는 "長樂堂"이 있다.
화성행궁의 침전으로 정조대왕이 혜경궁 홍씨의 만수무강을 빌며
직접 편액을 써서 걸었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과 어머니를 모시고 수원에서 머물때를 위해서 지은 건물로
"봉수당"과 통하게 만든,다른 건물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福內堂"은 화성행궁의 內堂으로
평상시에는 화성 유수의 가족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維與宅"은 평상시에는 화성유수의 거처로 쓰이다가 임금이 행차하여
신하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쓰던 곳이다.
"외정리소"에서 각종 악기를 보관하는 곳도 구경하고
"南軍營"에서 각종 갑옷도 보고
앞마당에 나오니 느티나무가 보인다.
"槻木""營木""神木"이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600년 이상된 느티나무다.
화재로 훼손된 것을 2003년 5월 나무 살리기 작업을 해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는데
이 나무에 손을 대고 기도하면 모든일이 이루어 진다는 전설이 있다.
높이 30m 나무 둘레 6m에 이른다.
행궁의 잡다한 사무를 보던 집사들이 있던 "執事廳"을 마지막으로 궁을 나섰다.
"八達門"은 수리중이라 자세히 살필수 없고 성곽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지동시장"앞에 서니 왼편으로 성곽 공사 모습이 보이고
연결하여 복원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성벽에서 내려다 보니 "수원천"을 건너서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맨먼저 "東南閣樓"가 보인다.
남수문 방면의 방어를 위하여 "남공심돈"과 마주보며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東三雉"를 지나고
"東二鋪樓"에 도착했다.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서 "봉돈"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성벽에서 많이 돌출되어 있으며 판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동이포루에서 보니 "봉돈"과 성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烽墩"은 5개의 火頭가 있는데
평상시에는 남쪽 첫번째 화두에서 횃불이나 연기를 올려
용인 석성산과 흥천대로 신호를 보내고 다른 4개는 위급시 사용한다고 한다.
주변을 잘 살필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 시설로 만들어지는 것과 달리
성벽에 맞물려 있고 재료는 벽돌로 만든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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